전통시장(골목상권) 디지털화

전통시장 디지털화 로드맵

dh-news 2025. 7. 12. 15:15

전통시장의 디지털화는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많은 전통시장이 디지털화에 실패하거나 지속되지 못한 채 원상 복귀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전환을 단기간의 ‘사업’으로 접근하고, 기술의 도입 자체를 목적화한 결과다. 디지털화는 도입이 아니라 정착이 핵심이며, 시스템이 아니라 ‘운영되는 구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전통시장은 상인 구성, 고객층 특성, 물리적 환경, 상품군 등에서 일반 상업 시설과는 전혀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형화된 솔루션이나 기술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전통시장의 디지털 전환은 반드시 단계별 계획과 내부 실행력을 기반으로 한 로드맵을 수립하고, 각 단계를 충실히 이행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전통시장 디지털화 로드맵

 

첫 번째 단계는 ‘준비’이다.

디지털화는 기술을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디지털화의 본질은 시장 구성원이 변화의 방향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준비 단계에서는 시장 상인회 또는 조합 중심으로 디지털화 추진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구성원 간의 내부 합의 구조를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의 특성상 고령 상인의 비율이 높고, 디지털 기기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방적 사업 추진은 반발과 저항을 유발하기 쉽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디지털에 대한 기본 교육과 경험 공유이며, 초기부터 ‘누가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인가’라는 리더십 구조를 명확히 세우는 것이다. 또한 외부 전문가나 지자체 담당 부서, 청년 디지털 파트너 등과의 사전 네트워크를 통해 ‘도움받을 수 있는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 현명하다.

 

두 번째 단계는 ‘진단’이다.

현재 시장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설계도 운영도 의미를 잃는다. 진단은 단순히 디지털 기기의 보유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상점별 디지털 활용 역량, 고객 유형, 소비 동선, 체류 시간, 공간별 콘텐츠 확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시장 방문자들이 어떤 경로로 유입되고, 어느 공간에서 머무르며, 어떤 구간에서 이탈하는지에 대한 실측 자료가 필요하며, 상인의 상품군이 디지털 콘텐츠로 전환 가능한지 여부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 진단을 통해 도출되는 것은 전체 상점이 아닌 전환 가능성이 높은 상점군의 선별이며, 이를 통해 현실적인 사업 범위를 설정하고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전략적 접근이 가능해진다.

 

세 번째 단계는 ‘설계’다.

진단을 통해 얻은 데이터와 시장의 현실을 바탕으로 어떤 디지털화 구조를 만들어갈지 전략을 수립하는 단계이다. 설계는 단순히 시스템 구성이나 앱 개발 계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고객 경험 구조, 즉 시장을 방문한 고객이 어떤 흐름으로 체험하고 머무르며, 무엇을 촬영하고, 어떤 방식으로 다시 공유하게 될지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콘텐츠의 위치, 연출 방식, 촬영 유도 요소, 해시태그 구조, QR코드 배치 등 모든 요소와 연결된다. 또한 각 상점의 참여 수준과 디지털 역량에 따라 콘텐츠 유형을 나누고, 상점의 역할을 콘텐츠 제공자로 할 것인지, 체험 안내자로 할 것인지, 단순 노출 지점으로 둘 것인지에 대한 기능 구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매니저나 청년 인력의 역할, 외부 제작자의 협업 범위, 시장 브랜딩 방향성 등도 함께 결정되어야 설계가 완성될 수 있다.

 

네 번째는 ‘구축’ 단계이다.

설계에 따라 실제로 콘텐츠를 만들고, 시스템을 개발하며, 현장에 설치하고, 상인과 고객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결과보다 ‘누가 운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갖는 것이다. 앱을 개발하거나 포토존을 설치하는 일은 전문가의 손에서 어렵지 않게 완성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앱에 정기적으로 상품 정보를 올릴 사람, 포토존을 정리하고 안내할 사람, 콘텐츠를 홍보하고 후속 캠페인을 기획할 운영 인력 없이는 3개월 안에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구축은 기술과 디자인이 아니라, 운영 가능성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며, 일부 상점 중심으로 먼저 도입해 운영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후 확산하는 방식이 가장 안전하다. 특히 구축 이후 바로 마케팅을 시작하기보다는 내부 운영 안정화를 위한 ‘파일럿 기간’을 명확히 설정하고, 문제점이나 개선 사항을 내부적으로 수정하는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는 ‘운영’ 단계이다.

운영은 모든 디지털화 과정에서 가장 길고 중요하며 동시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시장이 구축까지만 마치고 이후 운영이 방치되는 이유는 예산 소진, 인력 이탈, 콘텐츠 부족, 상인 무관심, 고객 반응 저조 등 다양한 현실적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운영 단계에서는 주간 단위로 콘텐츠를 갱신하고, 앱 이용 데이터를 분석하며, 고객의 후기와 리뷰를 수집하고, 상점의 참여율을 점검하는 등 모든 활동이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고객이 남긴 후기 한 줄,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 앱 다운로드 수 하나하나가 모두 피드백으로 기능하고, 이 데이터를 통해 다음 기획을 결정하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 운영 조직은 청년 디지털 매니저, 상인 대표, 외부 컨설턴트 등이 팀을 이뤄 구성될 수 있으며, 콘텐츠 기획자와 SNS 운영 담당자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가 이상적이다. 운영은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지만, 매뉴얼이 있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이 있다면 다시 안정될 수 있다.

 

마지막 단계는 ‘확장’이다.

전통시장의 디지털화는 단일 시장에서 멈추지 않는다. 성공적인 운영 구조가 구축되면, 자연스럽게 지역 내 다른 시장이나 유관 조직과의 협업 가능성이 열리고, 이것이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진다. 확장 단계에서는 플랫폼을 공유하거나 콘텐츠를 교차 운영하며, 지역 축제나 관광 콘텐츠와 연계된 이벤트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외부 배달 플랫폼, 관광 포털, 지역 공공 앱과의 연동을 통해 유입 채널을 다변화하고, 전통시장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지역 콘텐츠의 중심 허브로 재정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 시장 단위의 공동 브랜드를 형성하고, 그 브랜드가 하나의 콘텐츠 라이브러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면, 시장은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경제 주체로서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전통시장의 디지털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누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가’라는 구조의 문제이고, 전환은 단기간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디지털화는 앱 하나, 포토존 하나로 완성되지 않으며,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인식, 역할, 책임, 기술, 콘텐츠, 운영 리듬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비로소 작동할 수 있다. 준비에서 확장까지의 로드맵은 이 연결을 단계별로 안내하는 실행 경로이며, 각 단계에서의 충실한 운영이 시장의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 전통시장은 낡은 공간이 아니다. 다만 그 공간에 새로운 체험과 콘텐츠, 사람과 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재구성해야 할 시간일 뿐이다.